‘무시’가 불러온 나비효과
1950년대 농업용 트랙터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얻은 한 남자는 당시 세계 최고 슈퍼카였던 페라리를 구매한다. 하지만 큰 기대는 큰 실망을 불러오는 법. 지속적인 잔고장이 발생하고, 메카닉에 일가견이 있던 그는 페라리의 창립자 엔초 페라리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단지 ‘비아냥’에 불과했는데. 이에 분노한 그는 페라리에 필적하는 슈퍼카 회사를 설립한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람보르기니이며, 그의 이름은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다.
페라리를 향한 분노를 머금고 1963년 탄생한 람보르기니는 지난 59년간 누구보다 빠른 속도에 매진하며 자신들만의 고유 영역을 구축해왔다. 페라리의 라이벌로 자연스레 람보르기니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 가히 페루치오의 분노가 슈퍼카 업계의 판도를 바꿨다고 표현해도 좋을 듯 싶다.
이렇듯 페라리를 정조준하며 브랜드를 전개해왔던 람보르기니가 앞으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예정이다. 2024년 LMDh 레이스카 출전 의사를 밝힌 것. LMDh 레이스카는 2023년부터 국제자동차연맹(FIA) 세계 내구 챔피언십(WEC)과 북미 IMSA 웨더텍 스포츠카 챔피언십에 도입될 새로운 탑 클래스. 유럽 르망 24시와 북미 데이토나 24시를 동시에 출전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스테판 윙켈만 람보르기니 CEO는 LMDh 레이스카 출전에 대해 “스포츠카 경주의 최고 단계로 도약하는 것은 회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가장 까다로운 경주에 참가해 회사의 역량을 측정할 것”이라 밝혔다. 이어 “신차를 위한 첨단 기술을 테스트할 수 있는 기회”라며 “(LMDh 레이스카는) 하나의 실험실”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출전 의사와 함께 람보르기니는 프로토타입의 티저 이미지를 공개했다. 전면부가 드러난 사진 속에는 브랜드 디자인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은 Y 형태의 라이트가 눈길을 끈다.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한 둥근 그린하우스 디자인이 적용됐고, 루프 상단에는 냉각과 엔진 산소 공급을 위한 에어 스쿱이 배치됐다. 파워트레인 사양은 미정.
한편, 람보르기니 외 푸조, 캐딜락, 아우디 및 BMW 등 세계적인 완성차 업체 역시 LMDh 레이스카 출전 의사를 밝혔다. 이미 푸조는 ‘뉴9X8’ 머신을 공개했으며, 캐딜락 역시 차량의 전체적인 모습이 담긴 티저 이미지를 공개하며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슈퍼카 시장의 왕자로 군림했던 람보르기니. 과연 일반도로가 아닌 트랙에서도 자신들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까? 설립 당시 페라리를 향한 분노를 다시 한번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글 / DESIGN ANAT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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