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는 일상 속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가구다. 집, 사무실 등 장소의 성격을 막론하고 공간에 머물기 위해 의자는 필수다. 없어서는 안 될 존재지만 중요성은 간과하기 쉽다. 당연하게 있어야 할 물건처럼 여겨지기 때문.
“앉으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의자는 의외로 단순하지 않다. 인체공학 구조와 아름다운 형태를 모두 갖춰야 제대로 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기능성과 심미성의 공존은 모든 디자인의 과제지만, 의자는 일상생활 속 사람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갖기에 두 가치가 더욱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래서 과거 디자인 거장들은 자신의 예술관을 나타낼 수 있는 오브제로 의자를 선택했다. 현대 건축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도 마찬가지. 그는 현대건축의 서막을 열었지만, 디자인에 대한 재능과 연구를 건축에만 한정하지 않았다.
이번 디자인 스토리는 르 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의자를 살펴보며, 의자가 실용적인 가구를 넘어 하나의 예술 오브제로 재탄생하는 순간을 조명한다.
르 코르뷔지에는 다양한 의자를 제작했다. 이 중 길고 우아한 실루엣이 인상적인 LC4가 유독 눈길을 끈다. 그의 이름을 차용한 모델명이지만, 사실 실질적인 디자인은 그의 동료이자 가구 디자이너였던 샬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이 맡았다.
그녀는 당시 주류 스타일이었던 아르데코 양식을 벗어나고자 했다. 아르 데코라티프art dé coratif의 줄임말인 아르테코는 장식 미술을 의미한다. 1920~30년대 파리를 중심으로 유행한 사조로 기하학 형태가 주를 이룬다.
그가 LC4 의자를 디자인한 시기 역시 아르데코 양식이 유행하던 1928년이었지만,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했다. 합리성을 중시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스타일과 동일하게 그 역시 장식적인 미감보다 의자 본연의 기능성에 집중했다.
이에 인체공학 연구를 시작했다. 마네킹을 활용해 편안한 자세를 위한 최적의 구조를 연구했다. 파스코Pascaud 박사의 수레포스Surrepos 안락의자와 토넷Thonet의 흔들의자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실질적 도움이 된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항공 분야였다.
그는 사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 계속 머무를 수 있는 구조를 고심했다. 그러다 우연히 항공 제품 카탈로그 속 옻칠한 강판으로 제작한 난형 프로파일의 제품을 보게 된다. 무언가를 발명하는 데 있어 항상 중요한 것은 1% 영감. 그는 제품을 참고해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난형 프레임과 이를 고정하는 H 받침대를 고안한다.
H 받침대 상단에 프레임이 얹어지고 그 위에 인체공학적으로 설계한 본체가 올라가는 구조였다. 원기둥 모양의 헤드레스트는 사용자가 원하는 위치에 고정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특히 그는 아르데코 양식에서 지양하던 유리와 금속 등을 적극 활용했고 본체에는 콜드 가죽으로 만든 매트리스를 배치했다.
의자의 모든 것이 아방가르드했다. 당시 주류 스타일과 180도 다른 철학 아래 새로운 가구를 탄생시켰다. 다만 이것이 상업적인 성공과 직결된 것은 아니었다. 특히 1929년 세계적인 경제 위기와 맞물려 저렴한 물건을 찾던 소비자에게 외면됐다.
LC4 의자가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긴 시간이 지난 1964년이었다. 카시나Cassina가 관심을 보이고 생산을 재개했기 때문. 그리고 이때 모델명이 LC4로 바뀌게 된다. 이전까지 불리던 모델명은 의자를 생산한 토넷이 부여한 B306. 카시나는 르 코르뷔지에의 이니셜을 참고해 LC라는 이름으로 개명한다. 이렇게 해서 지금의 LC4 의자가 탄생한다.
LC4 의자는 편의성과 심미성을 모두 충족했다. 자칫 한쪽으로 치우치기 십상이지만 샬로트 페리앙은 훌륭하게 균형점을 찾으며 기능적인 가구와 예술적인 오브제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구현했다.
약 100년이 지난 지금도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의자 디자인의 하나의 아이콘으로 일컬어지는 것 역시 이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닐까. ‘휴식 기계’라는 별명 뒤에는 시대의 유행을 떠나 제품 본연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샬로트 페리앙과 르 코르뷔지에의 용기 있는 노력이 숨어있다.
글 / DESIGN ANAT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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