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경험’의 시대다. 다양한 기업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경험을 골자로 다양한 마케팅을 펼친다. 침대 브랜드 시몬스는 침대를 찾아볼 수 있는 팝업 스토어를 오픈했고, 명품 패션 하우스 구찌와 루이비통은 팝업 레스토랑까지 열었다. 브랜드의 성격과 다소 거리가 먼 분야에 진출해 색다른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것.

“왜?”라는 질문이 절로 나오지만 답은 간단하다. 소비자의 브랜드 경험을 높이기 위해서다. 구찌가 팝업 레스토랑에서 어떤 고급 음식을 제공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음식을 먹기 위해 ‘구찌’라는 공간에 머무르며 자연스레 브랜드를 경험한다는 점. 음식을 먹는 것이 옷을 고르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하니, 브랜드를 경험하는 시간은 자연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의류 브랜드가 식음 공간을 갖추고 세계적인 요리사를 섭외하는 수고스러운 작업을 마다하지 않을 만큼 브랜드 경험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앞서 거창한 예시를 들었을 뿐, 브랜드 경험은 매우 사소한 과정 속에도 이뤄진다. 바로 물건의 ‘포장’을 뜯는 일이다.

디자인 업계에서는 이를 패키지 디자인이라 부른다. 포장을 하나의 디자인으로 대할 만큼 포장이 지니는 가치와 의미는 크다. 단순히 봐도 소비자가 제품보다 먼저 만나는 것이 포장 아닌가. 포장은 브랜드 경험의 진정한 시작이다.

문득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물론 현 상황에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작을 반이 아니라 ‘전체’로 대하는 브랜드가 있다. 전 세계 어떤 기업보다 포장에 예민하고 일찍이 그 중요성을 꿰뚫었다. 한번 뜯고 버리는 것이 아닌 오랫동안 보관하고 싶은 마음까지 생기게 한다. 디자인의 귀재, 애플이다.

애플은 포장을 하나의 제품으로 대한다. 포장 관련 업무를 위한 디자이너를 따로 채용할 정도다. 그들은 수백 개에 달하는 프로토타입 상자를 열어본다. 상자 모양, 각도, 포장을 위한 테이프까지 신중히 고심하고 연구한다. 애플이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이유는 단지 아름다운 포장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제품을 경험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애플의 포장과 제품 디자인은 결을 나란히 한다. ‘Less but better’ 즉, 미니멀리즘이다. 군더더기 없는 아이폰, 맥북 등의 디자인 문법이 포장 디자인에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아니, 어쩌면 더욱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을 보여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애플의 포장 속 거창한 설명 문구는 없다. 흰색 배경 위 브랜드 로고와 제품명이 전부다. 부족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애플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이 세 가지면 충분했다. 포장의 가시성은 제품 구매율과 직결된다. 일반적으로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하기까지 5초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5초 이내에 포장 디자인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나는 것이다.

5초는 길지 않다. 만약 이 시간 내에 여러 문장을 읽어야 한다면? 혼란만 가중되고 핵심은 놓치고 말 것이다. 애플의 포장은 직관적이다. 사과 로고가 애플임을 알리고 커다란 모델명이 제품을 설명한다. 그것이 끝이다.

흰색 배경 역시 강력한 힘을 지닌다. 2014년 유럽 과학 연구 저널에 게재된 “소비자의 구매 행동에 미치는 제품 포장의 영향” 연구에 따르면, 포장 색상이 구매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확히 말하면, 소비자의 구매를 자극하는 특정한 색상은 없다. 하지만 적절한 색상 선택을 통해 브랜드를 상징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애플이 선택한 색은 흰색이었다. 여러 색상이 혼합된 타 기업들의 박스 속 애플의 깨끗한 흰색은 오히려 더 눈길을 끈다. 무난한 색상이 차별화의 핵심이 된 것이다.

애플의 포장과 제품은 하나다. 박스를 열고, 테이프를 뜯고 제품을 마주하는 모든 순간이 합을 이뤄 애플이라는 브랜드 경험을 전달한다. 흰색, 로고, 제품명 단 세 가지 요소가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단지 아름다움을 위한 ‘Less but better’가 아닌 브랜드 자체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한 미니멀리즘인 것.

애플의 디자인이 대단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그 안에 담긴 원리와 이유를 알고 나니 필자는 이제 애플이 무섭게(?) 느껴진다. 이들을 뛰어넘으려면 도대체 어떤 디자인을 들고 나와야 하는 것인가? 경쟁사 디자이너의 한숨이 여기까지 들린다.

글 / DESIGN ANAT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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