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랜드로버는 향후 자신들의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칠 모델을 발표합니다. 바로 2008 랜드로버 LRX 컨셉입니다. 랜드로버 역사상 가장 작고 가벼운 모델 중 하나인 이보크의 모태가 되는 모델이 바로 이 컨셉입니다.

이 컨셉을 바탕으로 2011년 출시된 이보크의 모습입니다. 사실 컨셉과 너무 동일한 모습으로 나와 어떤 게 컨셉카이고 어떤 게 양산 모델인지 헷갈릴 정도인데요.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러워 보이지 않는 디자인입니다.

이렇게 세련된 디자인을 앞세워 랜드로버의 제 3의 전성기를 견인한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바로 랜드로버의 수석 디자이너인 ‘Gerry McGovern’입니다.

사실 이 컨셉은 그가 2008년 랜드로버에 스카우트된 뒤 처음 맡은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첫 작품부터 랜드로버의 대성공을 이끈 모델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가 얼마나 실력 있는 디자이너인지 알 수 있습니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 12년의 시간 동안 그가 성공시킨 랜드로버 모델은 비단 이보크에서 끝나지 않는데요. 오늘은 Gerry McGovern(제리 맥거번, 이하 맥거번)의 인터뷰를 통해 어떻게 그가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랜드로버를 이끌어 왔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그는 그의 첫 작품인 이보크에 대한 언급으로 인터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랜드로버는 이보크를 통해 정체되어 있던 브랜드 이미지를 바꿀 수 있었다”라며 이보크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이보크의 성공은 랜드로버의 재정적인 상황에 큰 이바지를 하였는데요.

이보크 성공에 힘입어 랜드로버는 Range Rover, Range Rover Sport, Discovery, Velar 같은 모델들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맥거번은 “현재의 랜드로버는 더욱더 성장을 해야 하며, 여기서 나의 역할은 대중들에게 더욱 설득력 있고 매력적인 디자인을 만드는 것”이라며 자신을 역할을 재정의 했습니다.

어떤 디자인이든 기존의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새로운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요. 아무리 뛰어난 디자이너인 맥거번도 예외는 아니였습니다. 그는 “새로운 디자인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아무것도 쉽게 정해지지 않고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예측할 수도 없다”라며 디자인이 쉬운 과정이 아님을 토로했습니다.

하지만 랜드로버는 벨라와 뉴 디스커버리 같은 모델을 연달아 출시하며, 과거의 모델들을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만드는 노력과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2017년 공개된 벨라는 이제까지 랜드로버에서 볼 수 없었던 매끈한 차체와 공기역학을 고려한 많은 디자인 요소가 들어가 있는데요. 맥거번은 ” 벨라는 랜드로버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디자인되었다. “라며 “우리는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2008년 랜드로버는 새로운 운명을 맡게 됩니다. 바로 인도의 타타그룹이 랜드로버를 인수한 것인데요. 이에 맥거번은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솔직히 그 당시 나는 걱정이 많았다. 그들은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브랜드의 방향성을 책임지는 수석 디자이너인 맥거번의 책임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기회는 위기에서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타타그룹의 랜드로버 인수는 오히려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고 합니다. 그는 “여타 다른 브랜드들은 전반적인 엔지니어링을 정해 놓고, 그 위에 단지 ‘좋아 보이 도록’ 디자인을 한다”라고 말하며 자신들은 그 반대라고 말합니다.

“랜드로버는 디자인을 먼저 정해 놓고 그 안에 엔지니어링을 설계한다”라고 프로세스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디자이너들과 엔지니어와의 관계는 항상 평등함을  강조했는데요. 그는 “타타그룹이 자신들의 자동차 시장에 대한 무지를 인정하며, 그들의 아무런 간섭이 없었기에 이런 프로세스가 나올 수 있었다”라며 감사함을 표현했습니다.


이 질문에 맥거번은 명쾌한 답변을 내놓습니다. 종종 스타일링과 엔지니어링적인 부분에서 충돌이 발생하고는 하는데요. 이에 맥거번은 “종종 스타일링이라는 명분 하에 너무 미적인 것에만 집착한다.”라며 문제점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디자인은 훨씬 더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좋은 ‘디자인’을 가진 제품은 항상 미학과 기능, 두 부분에서 분명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맥거번은 “진정한 ‘디자인’은 제품의 전반적인 부분을 보고 현실적인 편리성과 타당성을 고루 갖추는 과정”이라고 명쾌하게 정리합니다.

그는 부가적인 설명으로 1950년부터 1960년대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예시로 듭니다. “그 당시 디자인은 이미 정해진 엔지니어 패키지 위에 스타일링을 입히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합니다. 미학과 기능이 균형을 이루려는 노력 없이, 정해진 패키지 위에 디자인을 하는 것은 단지 ‘스타일링’을 하는 것이라고 못 박아 버립니다.

이 질문에 그의 정답은 ‘균형’이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LRX 컨셉을 예로 들었습니다. 모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LRX 컨셉은 뒤로 갈수록 올라가는 벨트라인과 반대로 부드럽게 떨어지는 루프라인이 큰 특징입니다. 이것이 이 컨셉의 핵심 요소였죠.

하지만 실제로 이보크 생산을 위해서는 변화가 불가피했습니다. 바로 너무나 작은 후방 창문 때문이었죠. 결과적으로 이보크는 범퍼와 루프라인이 기존 컨셉 대비 10mm 정도 올라간 상태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LRX의 느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에 맥거번은 “우리는 이 디자인을 고집부리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엔지니어링 요소로 인해 컨셉 모델의 디자인이 훼손되는 것도 원치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결국 우리는 그 둘 사이에 균형을 이루어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그는 먼저 랜드로버에는 레인지 오버, 디스커버리 그리고 디펜더라는 확실한 제품군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말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제품군 안에 있는 여러 모델들은 유사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는데요. 그는 레인지 로버와 레인지 로버 스포츠를 예로 들었습니다.

그는 “레인지 로버는 매우 격식을 차리는 디자인이며, 레인지 로버 스포츠는 스텔스기 같은 스포티함을 표현한 디자인”이라고 설명합니다. 두 모델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주간 주행등과 그릴의 크기와 선의 느낌입니다.

레인지 로버의 상대적으로 큰 사이즈의 주행등과 그릴은 무거운 느낌을 강조하고 있고 수직, 수평의 선 느낌은 단정하고 깔끔해 보입니다. 격식을 차린 디자인이라는 맥거번의 말이 한 번에 이해되는 디자인인데요. 반대로 레인지 로버 스포츠의 주행등과 그릴은 작아지고 역동적인 사선의 느낌이 강하게 적용되었죠.

맥거번은 “이렇게 전체적으로 많은 부분이 유사하지만, 차의 인상을 결정짓는 특정 중요한 디자인 요소에서 차별성을 부여하고 싶었다.”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유사성 없이 각 모델이 자기만의 색깔을 강조하는 것은 구식의 방법이라고 강조합니다.

맥거번은 랜드로버 3가지 제품군으로 다시 돌아와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하나의 제품군 안에서는 유사성을 강조하는 것이 맞지만, 완전히 다른 각 제품군들은 완전히 다른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고 강조하는데요. 그는 비교 대상으로 레인지 로버와 디스커버리를 꼽았습니다.

그는 디스커버리의 루프는 계단식으로 만들어졌으며, 레인지 로버처럼 앞에서 뒤로 매끄럽게 흘러가는 벨트라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그는 “레인지 로버, 디스커버리 둘 다 랜드로버이다. 최소한의 유사성은 있지만 그 둘은 엄연히 다른 디자인”이라며 “대중들이 조금만 더 자세히 우리 디자인을 관찰해 주기를 바란다”라고 마무리했습니다.

그는 디펜더를 언급하는 것도 잊지 않았는데요. 그는 1세대 디펜더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제조 기술로 만들어졌다고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물론 랜드로버는 최대한 정교하게 디펜더를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지 않았죠.

그는 다음 세대 디펜더에서 이러한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그는” 디펜더의 본질적인 가치인 견고함, 내구성 그리고 여러 기능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하는데요. 하지만 디자인에 대해서는 완강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절대 ‘레트로’에 중점을 두고 디자인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말이죠.

그는 1세대 디펜더를 좋아하는 사람은 2세대 디펜더를 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시대가 변한 만큼 확실히 변화된 디펜더를 선보이겠다는 그의 확고한 의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디펜더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랜드로버가 이렇게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그의 확고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는 럭셔리의 본질적인 요소란 ‘시간’과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라고 명쾌하게 답을 합니다. 그는 “자동차를 떠나 어떤 분야이건, 좋은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물건의 가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라며 “이렇게 자신이 무엇을 만들고 있고,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아는 그 마음가짐이 럭셔리의 본질이자 필수적인 태도”라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그는 에르메스 가방을 예로 들면서, 장인들이 만드는 이 가방은 1년에 많이 생산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오랜 기간 공을 들여야 하는 만큼 생산성은 크게 떨어지는 것이죠. 하지만 그는 이렇게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쏟는 것 또한 럭셔리가 가져야 하는 본질적인 요소라고 설명합니다.

오늘은 인터뷰를 통해 랜드로버의 수석 디자이너의 생각을 알아보았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확고한 의지, 그러면서도 과거의 가치를 확실히 알고 나아가 프리미엄 브랜드가 필수적으로 가져야 할 태도까지 꿰뚫어 보고 있는 제리 맥거번입니다. 과연 현 SUV의 절대강자 랜드로버를 이끄는 인물 답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오늘 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