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디자인의 살아있는 전설 ‘마르첼로 간디니’는 1938년 이탈리아 투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예술 감각을 키워갔는데요, 1965년 이탈리아의 유명한 카로체리아인 ‘베르토네’에 조르제토의 쥬지아로의 후임으로 입사하며 자동차 디자이너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는 베르토네에 입사할 때부터 수석 디자이너의 자리를 맡는 등 뛰어난 기량을 펼치며 다양한 자동차를 디자인했습니다. 특히 아직까지도 가장 아름다운 차량으로 회자되는 람보르기니 미우라부터 현재의 람보르기니 디자인의 초석이 되는 쿤타치 그리고 BMW 첫 5시리즈 등이 그의 손길을 거쳐 탄생했는데요, 오늘은 디자인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마르첼로 간디니의 작품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람보르기니 미우라는 그의 수많은 작품들 중 가장 잘 알려진 대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우라는 1966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습니다. ‘미우라’라는 이름은 람보르기니의 창업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직접 작명한 것으로서 여러 유명한 투우소를 배출해낸 사육사 ‘돈 안토니오 미우라’의 이름을 빌려 모델명으로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미우라의 제원은 전장 4260mm, 전폭 1760mm, 전고 1780mm 그리고 휠베이스는 2500mm로, 4250mm의 전장과 2620mm의 휠베이스를 가진 현재의 우라칸과 비슷한 크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미우라는 엔진이 차량 중앙에 위치하고 후륜구동을 사용하는 MR 구조로 제작되었는데요, 특이한 점은 일반적으로 V8 이상의 긴 엔진은 세로로 배치하는 것과 달리 미우라의 V12 엔진은 가로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미우라는 P400, P400S 그리고 P400SV까지고 총 3가지 버전으로 제작되었습니다. P400은 미우라 초기 버전으로 3939cc V12 엔진을 탑재하고 최대 350마력과 35.5kg.m의 토크를 발휘했습니다. 이를 통해 제로백은 6.9초, 최고 시속은 275km/h에 이르렀으며 당시 가장 빠른 양산차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습니다.

이후 페라리가 1968년 페라리 365 모델로 최고 시속 280km/h를 기록하며 해당 타이틀 거머쥐자 람보르기니는 더욱 가볍고 강력한 성능을 가진 미우라 P400S을 출시하게 됩니다. P400S의 성능은 최대 370마력과 38.8kg.m의 토크로 초기형 보다 더욱 향상되었지만 무게는 1040kg으로 더욱 가벼워졌습니다.

이를 통해 P400S는 4.5초 만에 100km/h에 도달했으며, 최고 시속은 288km/h에 달해 다시 한번 가장 빠른 양산차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습니다. P400S는 1969년부터 1971년까지 생산되었으며 이후 람보르기니는 더욱 강력해진 P400SV를 공개하며 미우라의 성공을 이어갔는데, P400SV는 290km/h의 최고 시속으로 다시 한번 타이틀을 갱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우라는 뛰어난 성능과 함께 당시 젊은 나이의 간디니의 뛰어난 감각이 녹아든 작품으로써 현재까지도 자동차 디자인의 명작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람보르기니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06년 북미 국제 모터쇼에서 미우라 공개 40주년을 기념하는 ‘미우라 콘셉트’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미우라 컨셉트는 유튜브 채널에서 소개해드린 또 한명의 레전드 디자이너, ‘발터 드 실바’가 디자인했죠.

하지만 당시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람보르기니는 “미우라 콘셉트가 미우라의 부활을 예고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미우라의 양산을 염두한 공식적인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간디니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람보르기니의 쿤타치를 들 수 있습니다. 미우라의 후속으로 1971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된 쿤타치는 1989년까지 총 16년 동안 생산되었으며 80년대 말까지 슈퍼카의 대명사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쿤타치는 각진 형태과 쐐기를 적절히 활용하는 마르첼로 간디니의 고유 디자인 언어인 ‘앵귤러& 웨지 프로파일(Angular and Wedge Profile)’이 제대로 녹아들어가 있는데, 특히 뒤로 급격하게 누워있는 A 필러와 전체적인 쐐기형 차체는 현재까지도 람보르기니 전 모델에 적용되는 그들의 아이덴티티로 자리매김했으며 람보르기니의 대표적인 시저도어 역시 쿤타치에서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쿤타치의 전체적인 제원은 전장 4140mm, 전고 1070mm, 전폭 1890mm 그리고 휠베이스는 2450mm로 전작인 미우라 대비 전장은 120mm, 휠베이스는 170mm 줄어들었지만 전폭과 전고는 각각 130mm, 20mm 더 늘어났습니다.

람보르기니는 제네바 모터쇼에서 쿤타치를 LP500으로 소개한 것과 같이 5리터 엔진을 탑재할 예정이었지만 당시 좋지 못한 재정 상태로 인해 미우라의 4리터 엔진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1974년에 나온 초기형 쿤타치 LP400은 3292cc V12 엔진을 탑재하여 최대 375마력과 36.5kg.m의 토크를 발휘했으며 최고 속도는 309km/h를 기록했습니다. 쿤타치를 통해 람보르기니는 다시 한번 양산차 최고 속도 타이틀을 차지했으며 이는 1984년까지 유지되었습니다.

쿤타치의 구동방식은 미우라와 동일한 MR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하지만 미우라와 다르게 쿤타치의 엔진은 세로로 배치되었으며 섀시는 알루미늄 소재로 제작되어 경량화와 견고한 내구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LP400는 1065kg이라는 가벼운 공차중량을 자랑했는데요, 이후 람보르기니는 1978년 더욱 강력한 LP400S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람보르기니의 초기 계획처럼 5리터 엔진을 탑재한 쿤타치는 1982년 등장했습니다. 모델명은 LP500으로 바뀌었으며 마력은 동일했지만 최대 토크는 41.0kg.m으로 더욱 향상되었습니다. 이후 1985년 람보르기니는 더욱 커진 5.2리터 5167cc V12 엔진을 탑재하고 최대 455마력과 50.1kg.m를 발휘하는 LP500QV를 출시했으며 1988년에는 창립 25주년을 기념하는 쿤타치 25th Anniversary 모델을 공개했습니다. 이렇게 쿤타치는 14년의 기간 동안 총 2042대가 판매되며 슈퍼카 시장에서 람보르기니의 입지를 더욱 단단하게 하는데 기여했고 2004년 스포츠카 전문 잡지인 ‘세계의 스포츠카’에서 가장 위대한 1970년대 스포츠카 순위에서 3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간디니의 디자인은 람보르기니뿐만 아니라 BMW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BWM는 1972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1세대 5시리즈를 발표하는데요, E12라는 코드명을 가지고 1972년부터 1981년까지 총 70만 대가 판매된 1세대는 사실 간디니가 베르토네에서 제작한 BMW 2200ti 가르미슈 콘셉트를 기반으로 디자인되었습니다.

간디니는 2200ti 가르미슈 콘셉트에서 직사각형 형태의 키드니 그릴을 육각형의 벌집 구조로 새롭게 해석하였고 리어 윈도우 부분에 동일한 육각형 망을 설치하는 등 매우 감각적이고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도를 펼치기도 했습니다.

BMW는 2019년 5세대의 뿌리가 되는 모델을 기념하고 간디니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 가르미슈 콘셉트를 그대로 재현하여 대중에 공개했습니다. BMW는 “가르미슈는 당시 찍은 흑백 사진만 몇 장 남아있는 등 자동차에 대한 세부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다시 만들어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는데요.

재현된 모델에는 유리로 덮인 헤드 램프가 그래도 적용되었고 육각형 형태의 키드니 그릴과 리어 윈도우 디자인이 동일하게 제작되었습니다. 특히 BMW는 최대한 오리지널 형태에 가깝게 제작하기 위하여 2002년에 생상된 섀시를 사용했으며 일부 부품은 3D 프린터로 복원하며 탑재되었습니다.

전체적인 조립은 당시 오리지널 가르미슈 콘셉트의 제작이 이루어졌던 이탈리아 토리노의 숙련된 기술자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간디니는 복원된 자신의 콘셉트카에 보고 “과거 만들어진 원본과 거의 동일하게 제작되었다”라며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자동차 디자인계의 거장 중 한 명인 마르첼로 간디니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간디니는 위에서 언급된 양산차들 이외에도 스트라 토스의 ‘제로’, 아우토비앙키의 ‘런어바웃’와 같은 전위적인 콘셉트 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콘셉트가, 양산차 구분 없이 넓은 스팩트럼을 보여준 간디니의 디자인은 현재 많은 자동차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명작으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과연 훗날 마르첼로 간디니와 같은 천재적인 자동차 디자이너가 다시 등장할 수 있을지 기대하며 오늘 글 마치겠습니다. 디자인 해부학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