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자동차를 떠올려보자. 자동차의 구조를 단순히 보면 단단한 프레임 위에 얇은 패널을 얹은 구조다. 패널 안쪽에는 엔진을 포함한 각종 부품들이 정신없이 놓여 있다.

그런데 반대로 패널 외부로 프레임이 배치된다고 생각해 보자. 부품들이 밖으로 산만하게 노출돼 있다면 무슨 느낌일까? 쉽게 상상이 안 간다. 일반적으로 봐 왔던 형식과 180도 다르기 때문. 내부 공간이 넓어진다는 장점이 생기지만 외관의 미감은 말도 아닐 터.

다소 극단적인 예시지만 건축 분야에서는 동일한 방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당연히 내부로 들어가 외부에서 보이지 않아야 할 각종 파이프와 계단, 심지어 엘리베이터의 작동 모습까지 그대로 노출한다. 쉽게 표현해 건물 전체가 ‘벌거벗은’ 느낌이다.

상식에 벗어나 보이지만 엄연히 하나의 건축 사조로 평가받는다. 바로 ‘하이테크 건축’이다. 하이High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줄임말로 최첨단 기계처럼 보이는 건축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예는 프랑스에 위치한 퐁피두 센터다. 1977년 완공된 퐁피두 센터는 당시 미완의 외관 때문에 많은 이들을 경악시켰다.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태의 건물이 들어선 것.

퐁피두 센터를 디자인한 건축가는 렌조 피아노Renzo Piano와 리차드 로저스Richard Rogers다. 각각 이탈리아, 영국 출생으로 현대 건축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훌륭한 건축가다. 이들의 삶과 건축 스토리는 분명 흥미롭지만 양이 방대해지기에 오늘은 퐁피두 센터를 필두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하이테크 건축, 이 중 리차드 로저스가 디자인한 런던의 로이드 빌딩Lloyd Builiding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로이드 빌딩은 글로벌 보험 기업 Lloyd’s of London(이하 로이드)의 본사다. 1686년 문을 연 로이드는 1928년 현재 위치인 런던 라임 스트리트Lime Street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 규모를 수용하기 위해 1970년대 후반 새로운 본사 설립을 계획하고 공모를 낸다. 이때 당선된 것이 바로 리차드 로저스의 설계안이었다.

당시 로이드는 몇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핵심은 증가하는 보험 인구에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과 여러 요구 사항을 수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춰야 하는 것.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개념 하에 설계된 리처드 로저스의 설계안은 이런 기준에 완벽히 부합했다.

인사이드 아웃은 말 그대로 내부에 있는 것을 외부로 꺼낸다는 의미다. 퐁피두 센터 건설 당시에도 활용한 개념으로 내부 기둥, 파이프, 엘리베이터 등 건물의 기본 요소를 외부에 배치하는 것이 핵심 골자다. 이는 자연스레 내부 공간 확장이라는 장점을 가져왔고 넓은 공간을 요구했던 로이드의 요구와 딱 맞았다. 또 리처드 로저스는 빌딩 내부 직선 건물의 12층을 모두 모듈식으로 구성해 공간의 유연성을 높였다.

건물 외관은 어지럽다. 복잡하지만 규칙적으로 질서 정연하게 정리된 각종 부품들은 카오스적 미감을 전달한다. 사실 공간의 효율성 외에도 인사이드 아웃 개념의 장점은 더 있다. 바로 효율적인 관리. 작업자가 건물 내부로 들어가지 않고 외부에서 유지, 보수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업을 방해하지 않고 외부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한 해외 매체는 “효율성에서 우아함을 찾았다”고 표현했다. 어지럽게 놓인 수많은 부품이 주는 첨단의 인상과 실질적인 효율성이 훌륭하게 짝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로이드 빌딩은 가압식 바닥공조 시스템으로도 유명하다. 건물이 높은 만큼 상부와 하부의 온도차가 발생하는데, 이를 적절하게 순환시켜 최적의 공기 온도를 유지하는 것을 가리킨다. 로이드 빌딩과 같은 하이테크 건축에는 유리가 상대적으로 많이 사용되는데 온실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더운 공기를 순환하는 시스템을 갖춘다. 이는 에너지 이용 효율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하이테크 건축이 환경친화적인 성격이라는 점이 여기서 나온다.

하지만 단점도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다. 상당한 양의 철을 사용하기 때문에 건축비가 증가할 수밖에 없고, 철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 배출로 인해 앞서 언급한 친환경적인 성격에 반문이 생긴다. 명과 암이 공존하는 건축 공법이다.

다시 로이드 빌딩으로 돌아와보면, 여러 장단점을 떠나 건물의 존재감 하나는 대단했다. 퐁피두 센터와 동일하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문을 연 1986년 당시에는 평가가 분분했다. 여전히 낯선 건축 공법이었기에 대중이 이를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와서 보면 리처드 로저스가 옳았다. 건축주가 요구하는 조건을 훌륭하게 충족했을 뿐 아니라 하나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만큼 디자인 역시 파급적이고 새로웠다. 이를 대변하듯, 로이드 빌딩은 2011년 English Heritage의 1등급 목록에 등재되었다. 하나의 건축물을 넘어 시대를 대표하는 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참고로 로이드 빌딩은 1등급 목록에 속한 건축물 중 가장 최신이다. 리처드 로저스의 선구안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렌조 피아노, 리처드 로저스 및 노먼 포스터 등 세계적인 건축가 이끈 하이테크 건축은 20세기 건축 스타일 중 가장 마지막 사조다. 가장 늦게 등장한 만큼 화려했다.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형태지만, 그만큼 건물이 주는 여운과 울림이 깊다.

여의도에 가면 더 현대 백화점 옆 빨간 띠를 두른 거대한 빌딩을 볼 수 있다. 다른 건물과 다소 이질감이 드는 이 빌딩이 바로 리처드 로저스의 작품이다. 물론 로이드 빌딩에서 느껴지는 최첨단의 감성은 부족하지만, 하이테크  건축 사조의 연장선에 있는 건물이라는 점에서 눈여겨볼만하다.

작년 12월 리처드 로저스는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세.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지만, 그가 남긴 하이테크 건축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영감 원천이 되고 있다. ‘첨단’이라는 단어는 필연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의미가 옅어진다. 하지만 50년 전 리처드 로저스가 그려낸 하이테크 건축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첨단의 감성을 진하게 전달하고 있다. 퐁피두 센터, 로이드 빌딩이 세계적인 랜드마크가 된 이유다.

글 / DESIGN ANAT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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