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페라리는 세상에 한대밖에 없는 원-오프 모델을 공개했습니다. 바로 페라리 ‘P80-C’입니다. 페라리는 고객의 요청에 맞게 그들 고유의 차량을 제작해 주는 ‘페라리 원-오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번 모델도 이러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것입니다. 특히 이번 모델은 2015년부터 약 4년의 시간 동안 개발되어 가장 오랜 기간 개발된 원-오프 모델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원-오프 모델은 기존에 있는 차량을 재해석하여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P80-C는 공도용이 아닌 트랙 전용 모델이었기에, 여기에 맞는 완전히 새로운 엔지니어링과 공기역학 그리고 디자인이 입혀졌습니다. 이러한 이유가 있었기에 4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P80-C는 페라리 488 GT3의 섀시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488 GT3의 섀시가 기존 488GTB보다 50mm정도 더 긴 휠베이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더 늘어간 공간 덕분에 엔지니어들은 좀 더 자유롭게 차량을 설계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늘어난 휠베이스를 통해 디자인적으로 ‘캡 포워드 효과’를 적용할 수 있었는데, ‘캡 포워드 효과’ 란 차량 캐빈의 앞,뒤를 각각 길게 뻗은 형식으로 제작하여 차량이 좀 더 슬림하고 공격적인 형태를 가지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통해 실내공간도 더욱 넓게 만들 수 있다는 이점도 있습니다.
이번 원-오프 모델의 디자인은 페라리 스타일링 센터(Ferrari Styling Centre)에서 이루어 졌으며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인 플라비오 만조니(Flavio Manzoni)의 지휘 아래 탄생하였습니다. 하지만 고객의 요청으로 제작되는 만큼 그들이 원하는 바가 적극적으로 반영되었는데, 페라리의 역사적인 과거 모델에서 영감받은 현대적인 디자인이 이번 고객의 요구 사항이었습니다.
총 2개의 모델이 선택되었는데, 하나가 330 P3 / P4이고 나머지 하나가 1966 Dino 206 S였습니다. 우선 페라리 디자이너들은 위에서 언급한 캡 포워드 효과를 통해 차량을 쐐기형 형태로 제작하였고, 특히 C 필러 안쪽으로 에어 인테이크를 만들어 마치 캐빈 부분과 에어 인테이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듯한 디자인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형식을 통해 시선이 프런트에서부터 리어까지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도록 하였고 입체적인 C 필러를 통해 차량의 다른 부분과 리어 부분을 시각적으로 분리시켜 디자인이 단조로워지는 것을 방지하였습니다.
더불어 P80-C는 앞 바퀴를 기준으로 사이드 에어 인테이크까지 차량이 안쪽으로 좁아지도록 디자인되었는데요, 그러다가 리어 휠 아치에서부터 다시 폭이 넓어져 차량의 볼륨감이 입체적으로 강조되고 있습니다.
리어 디자인 속에는 330 P3 / P4와 Dino 206 S가 모두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기존 차량이 루프에서부터 리어까지 부드럽게 이어져 있는 것과 다르게, P80-C의 엔진 커버가 있는 부분은 루프에서부터 급격하게 낮아져 입체적인 높이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또한 커버 주위의 루프 라인을 과거 두 모델처럼 유선형으로 제작하여 부드러운 느낌을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엔진 열을 방출하는 통풍구들은 330 P3 / P4와 매우 유사하게 디자인되었는데요, 세로 형식의 배치와 계단식으로 설계되어 매끄러운 엔진 커버 면에 시각적인 재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이번 리어 디자인에는 다른 페라리 모델과는 차별화된 점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리어 윈드 스크린 뒤쪽으로 조그마한 리어 스포일러가 추가로 설치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2017년 F1에서 적용된 T-윙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이 리어 스포일러는 후방 공기 흐름을 분산시켜 매우 짧은 ‘가상의’ 리어 윈드스크린 효과를 만들고 기포 분리(separation bubble)를 최소화 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여분의 스포일러를 통해 더 많은 다운 포스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프런트 디자인은 오직 트랙 주행에 초점을 맞춰 디자인되었습니다. 거대한 2개의 에어 덕트가 프런트 후드에 만들어져, 프런트 하단부에서부터 들어온 공기가 자연스럽게 루프 위쪽으로 흐를 수 있도록 유도하였습니다. 공도용이 아니기에 트랙에서 불필요한 큰 헤드 램프는 없어졌으며 대신 보닛 아래쪽에 헤드 램프를 연상시키는 2개의 구멍과 LED를 배치했습니다.
리어 램프 역시 프런트와 동일한 형식으로 제작되어 전체적인 통일성을 높이고 있으며 엔진 열을 배출하는 공간을 제외하고는 전부 대형 디퓨저로 덮여 있습니다. 디퓨저 아래 와류 발생기(볼텍스 제네레이터, Vortex Generator)는 488 GT3의 것이 동일하게 사용되었습니다.
페라리는 P80-C을 두 가지 버전으로 바꿀 수 있도록 제작하였습니다. 레이싱과 전시용 버전이 있으며, 레이싱 버전에서는 거대한 탄소섬유 스포일러와 18인치 단일 너트 휠이 탑재됩니다. 반대로 전시용 버전에서는 리어 스포일러가 제거되며 휠 역시 21 인치로 바뀌게 됩니다. 더불어 차체는 ‘로소 버로(Rosso Vero)’라는 색상으로 마감되어 있습니다.
이제까지 페라리의 원-오프 모델 P80-C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차량의 가격은 비밀 사항으로 정식으로 공개되지 않았으나 상상 이상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가격을 떠나 원-오프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4년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한 것에서 페라리의 정성과 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페라리는 새로운 모델을 개발할 때마다 자사의 과거 모델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하는데요, 한정된 모델에서 항상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만약 페라리가 다음 원-오프 모델을 만들 계획이 있다면, 과연 어떤 디자인과 새로운 기술을 탑재하고 나올지 기대하며 오늘 글 마치겠습니다. 디자인 해부학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