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람보르기니는 자사의 현대화를 이끌 새로운 모델을 출시했습니다. 바로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입니다. ‘무르시엘라고’라는 이름은 1879년 스페인에서 벌어진 투우 경기에서 24번이나 칼에 맞고도 죽지 않은 전설적인 황소 이름에서 따온 것인데요, 2001년 첫 시작으로 2010년까지 9년의 시간 동안 총 4,099대가 판매된 모델입니다.

람보르기니는 디아블로 이후 11년 만의 새롭게 출시하는 기함 모델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우선 그들이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섀시와 서스펜션이었습니다. 람보르기니 엔지니어들은 설계 단계에서 섀시의 강화를 주요 과제로 삼았고 탄소 섬유 – 벌집 구조로 이루어진 고강도 강철 튜브 프레임을 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탄소 섬유는 접착제와 강철 리벳의 조합을 통해 강철 프레임에 부착되었으며, 더 큰 강성을 위해 강철 지붕과 탄소 섬유 바닥이 추가되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로 무르시엘라고의 섀시는 20,000 Nm / °를 초과하는 비틀림 강성 값을 달성할 수 있었는데요, 이외에도 기존 디아블로 섀시와 비교하여 새롭게 바뀐 점들이 있습니다.

무르시엘라고의 프런트 쇼크 업소버, 토션 바 그리고 서스펜션 마운팅 모두 15mm 앞쪽으로 이동하였으며 리어 휠 아치의 일부 튜브와 패널은 탄소 섬유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하부 지오메트리는 프런트 액슬의 위치에 맞게 수정되어 운전자가 페달을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늘렸습니다.

여기에 유압식 쇼크 업소버를 장착한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은 앞, 뒤 독립적으로 배치하여 핸들링과 직진 안정성을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리어 쇼크 업소버 마운팅을 위해 더욱 견고하고 탈부착이 가능한 크로스 멤버가 설치되었습니다.

이렇게 섀시와 서스펜션 부분에서 대대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무르시엘라고의 전체적인 레이아웃은 람보르기니의 전통적인 2 도어 쿠페 형태를 따르고 있습니다. 차량 가운데에 V12 엔진이 위치해 있고 그 앞쪽에는 기어 박스가, 뒤쪽에는 리어 디퍼렌셜이 있는 구조로 42%-58%의 이상적인 중량 분배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완벽한 무게중심의 기준이 되는 엔진은 6,192cc의 60 ° V12 엔진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엔진은 최대 7,500RPM까지 회전할 수 있으며 최대 출력 580마력과 5,400rpm에서 최대토크 650Nm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데요, 부품 대부분이 알루미늄 합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미국, 일본 그리고 유럽의 엄격한 배기가스 기준을 준수하도록 제작되었습니다. 강력한 엔진 덕분에 무르시엘라고는 3.8초 만에 100km에 도달할 수 있었고 최대 속도는 330km에 달했습니다.

여기에 가변형 흡기 시스템 (VIS), 가변 밸브 타이밍 (VVT)이 엔진 입구와 배기 캠 샤프트에 장착되어 매우 낮은 RPM에서도 많은 양의 토크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무르시엘라고는 2,000RPM이라는 매우 낮은 회전 영역에서도 당시 웬만한 GT 카의 최대 토크보다 더 많은 토크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배기가스 감소, 공회전 속도 제어 그리고 주행 향상을 위한 ‘드라이브 바이 와이어’라는 전자 스로틀 제어 시스템이 탑재되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건식 섬프 윤활 시스템이 탑재되어 엔진을 기존 대비 50mm 정도 낮게 설치할 수 있었는데, 이를 통해 더욱 낮은 무게중심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엔진의 가장 중요한 점은 완전히 새롭게 개발된 공기 흡입 기술입니다.

‘VACS (가변 공기 흐름 냉각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이 시스템은 엔진 냉각을 위해 설계된 가변 에어 인테이크 기술입니다. 람보르기니 엔지니어들이 이 기술을 쓴 이유는 최대 온도에 도달한 엔진을 냉각하기 위해서는 외부에 매우 큰 인테이크가 필요했는데, 이를 고정식으로 만들면 에어로 다이내믹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엔지니어들은 필요할 때만 밖으로 나오는 가변 에어 인테이크를 설치한 것입니다.


무르시엘라고의 전체적인 디자인은 이전 모델인 디아블로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람보르기니 디자이너들은 순수함, 근육질의 차체 그리고 에어로 다이내믹에 초점을 맞춰 디자인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면서도 람보르기니의 역사를 한곳에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람보르기니는 무르시엘라고의 디자인에서 총 3대의 과거 모델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쿤타치, 미우라 그리고 디아블로가 그것인데요, 우선 마르첼로 간디니가 디자인한 쿤타치는 특유의 쐐기형 디자인과 직선적인 느낌으로 1970년대 슈퍼카의 아이콘이 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갈수록 얇아지고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것 같은 느낌의 쐐기형 디자인은 무르시엘라고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쿤타치처럼 직선이 강조되거나 차가운 느낌이 부각되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미우라의 관능적인 곡선을 중심으로 차체가 디자인되었기 때문입니다. 미우라는 람보르기니 최초의 양산형 미드십 스포츠카로 쿤타치를 디자인했던 간디니가 동일하게 디자인한 모델이기도 합니다.

부드러운 곡선미가 특징인 미우라는 출시 당시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으며 현재까지도 가장 아름다운 스포츠카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데요, 람보르기니는 많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대중들에게 찬사를 받는 미우라의 디자인을 자신들의 새로운 모델에 녹여낸 것입니다.

디자이너들이 영감을 받은 마지막 모델은 디아블로입니다. 간디니의 손길을 거친 마지막 람보르기니 모델로서 뒤로 누워 있는 A 필러, C 필러 부근의 에어 인테이크 그리고 전반적인 비율이 무르시엘라고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람보르기니 디자이너들도 디아블로에서 무르시엘라고의 전반적인 비율을 가지고 왔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무르시엘라고에는 쿤타치부터 적용된 람보르기니 시그니처 요소인 ‘시저 도어’가 동일하게 적용되었으며, 위에서도 언급한 가변식 에어 인테이크와 리어 스포일러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엔진 온도에 따라 자동으로 컨트롤 되는 에어 인테이크는 최대 20도까지 개방되며 경우에 따라 운전자가 수동으로 조작할 수도 있습니다.

가변식 리어 스포일러는 차체에 비해 매우 작은 사이즈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스포일러는 130km에서부터 작동하기 시작하며 130km에서 220km까지는 50 도의 각도로 열리며, 220km 이상부터는 70 도로 완전히 개방되게 됩니다. 이러한 가변식 디자인으로 인해 무르시엘라고의 공기저항 계수는 Cd 0.33에서 0.36까지 다양하게 변하게 됩니다.

디자이너들은 무르시엘라고의 인테리어가 익스테리어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느낌을 만들어 냈습니다. 내부 디자인도 외관과 같이 볼륨감과 곡선의 느낌이 강조되었으며 도어 패널과 대시보드는 마치 하나의 형태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내부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센터 콘솔 디자인으로, 운전자 중심으로 기울어져 있어 주행 중에도 간편하게 조작할 수 있도록 하였고 조수석과 물리적으로 분리시켜 주행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번 무르시엘라고 디자인은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탄생하였는데요, 바로 5년 동안 제네시스 디자인을 총괄하기도 했던 루크 동커볼케입니다. 1990년 푸조에서 자동차 디자이너로서 캐리어를 시작한 그는 아우디가 소속되어 있는 폭스바겐 그룹으로 자리를 옮겨 A4 아반트와 R8을 디자인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1998년 람보르기니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된 뒤 무르시엘라고 프로젝트를 맡게 됩니다. 또한 람보르기니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인 가야르도를 디자인 했으며, 미우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미우라 컨셉’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동커볼케는 약 7년의 기간 동안 람보르기니 디자인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이를 바탕으로 람보르기니는 아벤타도르와 우라칸을 성공적으로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람보르기니의 무르시엘라고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무르시엘라고는 경영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람보르기니가 폭스바겐 체제 아래 안정적으로 생산을 시작한 첫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약 40년의 세월 동안 미우라부터 디아블로까지 람보르기니가 쌓아온 명성과 노하우가 모두 들어가 모델이기도 합니다.

오랜 기간 함께한 마르첼로 간디니의 손길을 벗어나 당시 젊은 감각의 디자이너를 통해 재탄생한 무르시엘라고는 람보르기니의 현대화를 적극적으로 이끈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4,099대의 판매를 통한 재정은 람보르기니가 안정적으로 아벤타도르를 준비할 수 있게끔 해주었는데요, 여러모로 람보르기니에게 의미 있는 모델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현재 람보르기니는 ‘시안’과 같은 한정판 모델을 판매하면서 다음 세대의 기함 모델 출시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과연 무르시엘라고와 아벤타도르의 명성을 이어갈 명작이 탄생할 수 있을지 기대하며 오늘 글 마치겠습니다. 디자인 해부학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