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남짓한 짧은 역사,
하지만 강렬한 존재감은 여전해

안녕하세요. DA 리포트입니다.
그래픽 디자인의 대가 브루스 블랙번(Bruce Blackburn)이 올해 초 향년 82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더니즘과 미니멀리즘을 바탕으로 뉴욕 현대 미술관, IBM 등의 로고를 탄생시킨 그는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요. 이런 그의 영향력은 지구를 넘어 우주까지 뻗어 나갔습니다. 나사의 웜(Worm) 로고를 디자인한 것이었죠.

빨간색의 둥글한 글씨체, 우주 분야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면 한 번쯤 보셨을 웜 로고는 기존 미트볼 로고를 대체하기 위해 제작됐습니다. 1958년 나사 창설 이후 1년 만에 제작된 이 로고는 원형 바탕에 우주 그래픽을 새겨 넣어 나사의 성격을 직관적으로 드러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대성은 떨어졌습니다.

특히 달 착륙 성공으로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이 이어지자 나사는 이미지를 새롭게 제고할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때마침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NEA(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가 미연방 디자인 개선 프로그램(US Federal Design Improvement Program)을 진행하게 되고, 여기서 웜 로고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 로고는 브루스 블랙번과 그의 스튜디오 파트너인 리처드 댄(Richard Danne)의 합작으로 제작됐습니다. 1973년 로고안을 제출할 당시 두 사람은 스튜디오를 이사한 상황이어서 매우 적은 비용으로 로고를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는데요.

댄은 웜 로고에 대해 “우리가 제안한 로고는 기존 디자인과 정반대였다”며 “깨끗하고 미래지향적이며, 1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읽을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모든 매체에서 사용하기 쉽다고 강조했죠.





디자인 과정에서 블랙번과 댄이 중점을 둔 부분은 나사의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우주 분야를 다루는 특이성을 담아내고자 했는데, 기존 알파벳 형태를 곡선 위주로 변형한 것 역시 마치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로고에 담긴 두 디자이너의 의도는 좋았지만, 이 디자인이 공식 로고로 순탄하게 채택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너무 급진적인 형태가 오히려 발목을 잡았는데, 특히 나사 행정부는 A의 중앙 획이 생략된 것을 문제 삼기도 했습니다.

이후 블랜번과 댄의 오랜 설득 끝에 이들의 디자인은 1975년 나사 공식 로고로 채택되고, 1992년까지 17년 동안 사용됩니다. 안타깝게도 1986년 우주 왕복선이 폭발하는 참사가 일어나는데, 나사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이고자 기존 미트볼 로고를 부활시키며 웜 로고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웜 로고는 짧은 역사를 뒤로하고 자취를 감췄지만, 디자인에 대한 호평은 오랫동안 계속됐습니다. 일례로 유명 디자인 컨설팅 기업 팬타그램의 수장 마이클 비어트(Michael Bierut)는 2009년 뉴욕 타임지와 인터뷰에서 “미트볼 로고는 아마추어 같다”라는 혹평과 함께 “웜 로고가 절대적으로 적절했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블랜번과 댄의 뛰어난 디자인 감각이 묻어나는 웜 로고는 스페이스 X 팔콘 9 로켓에 그려지면 다시 한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나사는 해당 로켓이 첫 상업 로켓이자 2011년 이후 첫 유인 로켓이라는 점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뜻을 표현하고자 웜로고를 그려 넣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심미적인 디자인과 별개로 첨단 기술력이 주 무대가 되는 우주 분야에서도 자신의 역량을 발휘한 브루스 블랙번. 비록 이제는 볼 수는 없지만 그가 디자인한 여러 로고들이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길 염원하며 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DA 리포트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 DESIGN ANAT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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