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자동차 디자인 해부학입니다.
17년간 BMW에 몸담았던 크리스 뱅글은 한때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일컬어졌습니다. 수많은 자동차 디자이너 중 그가 이러한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자동차 디자인에 미친 파급력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트렁크 리드 패널과 리어 쿼터 패널에 서로 다른 볼륨감을 적용하며 완전히 새로운 조형미를 창조해냈는데, 라이벌인 벤츠가 5세대 S클래스에서 이를 활용한 것을 보면 그 파급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BMW는 크리스 뱅글이 정립한 새로운 디자인을 통해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사실 알고 보면 그 기간 벤츠 역시 향후 자동차 디자인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안해냈습니다. 바로 ‘쿠페형 세단’입니다.

쿠페형 세단은 말 그대로 세단과 쿠페를 하나로 합쳐놓은 세그먼트입니다. 세단의 편안함은 유지하면서도 쿠페의 날렵한 프로파일과 스포티함을 겸비한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특히 일반적인 세단과 비교하여 완전히 다른 디자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데, 바로 패스트백 루프라인입니다. 

일반적으로 C필러가 트렁크 앞부분에서 끝나는 일반 세단과 다르게 쿠페형 세단은 트렁크 리드 끝까지 연장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기존 3박스 구조의 고전적인 실루엣 대신 캐빈과 트렁크가 하나로 합쳐진 유려하고 부드러운 프로파일을 보여줍니다. 오랜 기간 정형화된 기존 세단 대비 더욱 스포티하고 젊은 감각이 부각되는 것이죠.

이를 가장 잘 활용한 차량 중 하나가 바로 K5입니다. 기아는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3세대 K5에서 기존 3박스 형태의 세단의 이미지를 버리고 패스트백 루프 라인을 적용했습니다. 또한 리어 윈도 글라스를 따라 하나로 연결되는 크롬 가니시와 1,445mm의 낮은 전고가 날렵함을 한층 더 부각시켰습니다.

K5 이외에도 패스트백 루프라인을 통해 쿠페형 프로파일을 보여주는 차량은 많습니다. 그중 2010년 출시된 아우디 A7이 대표적인 모델로 꼽히고 있으며, SUV 중에서는 BMW의 X6, 마세라티의 르반떼 등이 쿠페형을 가장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차량들 모두 쿠페형 디자인을 활용했을 뿐 원조 격 모델은 아닙니다. 진정한 시작은 벤츠가 2003년 공개한 비전 CLS 콘셉트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인 비전 CLS 콘셉트는 매우 파격적인 모델이었습니다. 기존에 없던 쿠페형 세그먼트라는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낸 것인데, 사실 벤츠가 이러한 도전을 감행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세단의 판매량이 줄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전 CLS 콘셉트가 공개되었던 2000년대 초는 고성능 및 프리미엄 SUV의 인기가 늘어나던 시기로서, 특히 2002년 출시된 포르쉐의 첫 SUV 카이엔은 이러한 유행에 따라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SUV의 판매량이 점차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세단의 판매는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벤츠는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킬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습니다.

당시 벤츠는 세단의 소비자와 일반적으로 2열 공간이 협소하거나 아예 없는 쿠페 구매자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차량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분산된 소비층을 하나로 응집시켜 판매량을 높이고자 한 것인데, 사실 상반된 두 세그먼트를 하나로 합치는 것은 당시만 해도 완전히 새로운 사고법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과제의 돌파구는 한 디자이너의 스케치로부터 나왔습니다. 2001년 당시 메르세데스 독일 스튜디오에서 근무하던 미국 출신의 디자이너 마이클 핑크(Michael Fink)가 세단과 쿠페를 절묘하게 합쳐놓은 스케치를 선보인 것입니다. 비록 2열 헤드룸과 수화물 공간이 협소해지는 단점이 있었지만, 벤츠는 새로운 스케치의 잠재력을 단번에 알아보게 됩니다. 

이에 2002년 7월 새로운 디자인과 관련한 특허를 제출하고 당시 E클래스를 기반으로 해당 스케치를 현실화시키게 됩니다. 그렇게 등장한 결과물이 바로 2003년 공개된 비전 CLS 콘셉트였습니다. 당시 벤츠는 핑크의 스케치와 최대한 유사하게 차량을 제작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엄청난 존재감을 지녔던 비전 CLS 콘셉트 디자인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세단보다 두꺼워진 C 필러입니다. 루프라인이 뒤쪽으로 더욱 연장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두꺼워진 것인데, 핑크와 그의 디자인 팀은 B필러를 어둡게 처리하여 외부의 시선이 최대한 쿠페형 프로파일에 집중될 수 있도록 유도했다고 밝혔습니다. 더불어 프런트 펜더부터 리어 라이트까지 이어지는 캐릭터 라인이 차량의 긴 길이감을 더욱 강조했습니다. 

벤츠는 콘셉트 공개 1년 뒤인 2004년 벤츠는 1세대 CLS를 출시했으며, 2010년에는 2세대 그리고 2018년에는 3세대 모델을 출시하며 지금까지 약 17년간 쿠페형 세단의 대표 자리를 굳건하게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 사이 아우디의 A7, BMW의 그란 쿠페(현 8시리즈) 그리고 포르쉐의 파나메라 등 쟁쟁한 경쟁 차량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1세대 CLS의 파급력은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과연 현재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 벤츠 디자인이 개인의 기호를 떠나 자동차 디자인 역사에 다시 한번 큰 변화의 소용돌이를 일으킬 수 있을지 기대해보며 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자동차 디자인 해부학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 DESIGN ANATOMY
문의 / designanatom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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