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은 벤츠에게 끔찍한 한 해였습니다. 이 해는 그 유명한 경기 도중 차가 공중으로 날아가버리는 사고가 발생한 해였는데요, 벤츠는 과거 1955년 드라이버와 80명의 관중들을 사망하게 한 아픔이 있었기에 이 사고는 더욱 뼈아플 수 밖에 없었습니다.

1999년 이전까지 벤츠의 돌풍은 무서웠습니다. 벤츠는 1998년 CLK-GTR 레이싱카로 GT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했으며 르망에서도 그 기세를 이어가고 싶어 했습니다. 당시 참가한 차량은 ‘CLR’으로, CLK-GTR의 후속 모델이었습니다. 겉모습은 CLK-GTR과 매우 유사했지만, 더욱 낮은 전고와 부드러운 면을 가지고 있는 차량이었습니다.

1999년 르망 24시는 도요타, 아우디 그리고 BMW 등 여러 우승 후보들이 대거 참가를 하였고 여기에 벤츠까지 합세하며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켰습니다. 출전 소식과 함께 GT 챔피언십까지 거머쥔 벤츠가 과연 우승을 할 수 있을지 많은 기대가 쏟아졌습니다.

당시 벤츠는 3대의 차량과 드라이버를 운영하였습니다. 그중 2명이 마크 웨버(Mark Webber, 이하 웨버)와 피터 덤브렉(Peter Dumbreck, 이하 덤브렉)으로 어리고 패기가 넘치는 선수들이었는데요, 안타깝게도 이 두 선수 모두 위에서 언급한 차가 공중으로 날아가 버리는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첫 번째 사고는 마크 웨버의 차량에서 발생했습니다. 퀄리파잉 섹션을 주행하던 웨버의 차량이 갑자기 공중으로 떠오른 것인데요, 다행히도 웨버는 큰 부상을 입지 않고 차에서 나오게 됩니다. 이 사고는 카메라 화면에 잡히지 않았으며 벤츠 역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사고를 대비하기 위하여 벤츠는 프런트 휠 아치 전방에 다운 포스를 증가시킬 에어로 파츠를 부착하고 부드럽게 세팅되었던 리어 서스펜션을 좀 더 딱딱하게 설정하여 큰 다운 포스로 인해 리어 서스펜션이 가라 않고 프런트 부분이 들리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웨버의 차량은 다시 한번 공중으로 날아가게 됩니다. 웜업 섹션 중 일어난 이 사고는 말 그대로 순식간에 일어났는데요, 하늘로 날아오른 차량은 거꾸로 뒤집혀 지붕으로 착지하게 됩니다.

다행히 웨버는 이번에도 큰 부상을 입지 않고 차에서 탈출하였지만, 사고를 본 많은 사람들은 벤츠가 메인 경기에 나올 수 있는지 의심을 품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당시 맥라렌-메르세데스 F1 기술 책임자였던 ‘아드리안 뉴이’가 즉시 철수할 것으로 권하기도 했지만 벤츠는 이를 무시하게 됩니다.

드디어 메인 섹션이 열리고 마크 웨버의 차량을 제외한 2대의 모델이 본선 주행에 참가하게 됩니다. 피터 덤브렉 역시 이 중 한명이었습니다. 뎀브렉의 CLR은 문제없이 주행을 하며 경쟁자였던 도요타를 앞서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덤브렉의 75번째 랩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하게 됩니다. 바로 차가 또다시 공중으로 날아오른 것이었는데요, 뎀브렉의 CLR은 공중에서 3번 정도 회전하며 트랙 옆 나무로 추락하게 됩니다. 당시 이 장면은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고, 사고 이후 벤츠는 즉각 르망 24시에서 철수하게 됩니다.


CLR의 전체 길이는 4890mm였는데, 그중 휠베이스의 길이는 2670mm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2180mm는 프런트와 리어 오버행의 길이였습니다. 당시 함께 참가한 토요타, BMW 그리고 아우디 차량의 휠베이스가 각각 2850mm, 2790mm 그리고 2700mm인 것을 감안할 때 매우 짧은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긴 차량에서 짧은 휠베이스를 가지면 직진 안전성이 떨어지는데요, 무게 중심이 가운데 있는 탓에 앞, 뒤로 기울어질 위험이 큰 것입니다. 마치 시소와 같은 원리입니다. 여기에 오버행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밸런스의 불균형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더불어 CLR의 피치각은 거의 0에 가까웠습니다. 자동차에서 ‘피치각’이란 차체의 기울기를 뜻하는데요, 통상적으로 레이싱 차량들은 약 -2도 정도 앞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습니다. 한마디로 앞이 더 낮고 뒤가 더 높은 형태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CLR의 피치각은 약 -0.7 도 정도로 지면과 거의 평행한 수준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저속 주행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고속 주행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차량이 브레이크를 밟으면 뒤가 뜨게 되고 가속을 하게 되면 앞이 뜨게 되는데, 피치각이 제로에 가까웠던 CLR은 고속으로 주행할수록 앞쪽이 서서히 들리게 된 것입니다.

이번 사고가 르망 서킷 중 5km에 달하는 직진 코스인 ‘뮬산(Mulanne)” 구간에서 일어난 것도 바로 이러한 원인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 이 코스는 약간의 언덕 구간이 있었는데, 웨버의 두 번째 사고도 이 언덕을 내려오다가 발생하였고 덤브렉의 사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언덕의 내리막길과 더불어 많은 다운 포스로 무거운 뒤쪽 때문에  자연스럽게 앞이 더욱 들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한 차량이 마치 비행기 이륙하듯이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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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벤츠의 불운의 레이싱카 CLR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덤브렉은 다행히 차가 뒤집힘 없이 그대로 착지하여 큰 부상을 면할 수 있었는데요, 벤츠의 이 사건을 계기로 르망에 참가하는 차량의 오버행 길이에 대한 규제가 생겼고 뮬산 코스를 평평하게 다듬는 작업도 이루어졌습니다.

벤츠 역시 이러한 실패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레이싱 대회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현재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F1 팀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6시즌 우승을 거머쥐었고, 현재 시즌도 우승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요, 과거의 상처를 딛고 현재 엄청난 영광을 누리고 있는 벤츠에 존경의 박수를 보내며 오늘 글 마치겠습니다. 디자인 해부학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