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람보르기니는 파격적인 디자인을 갖춘 새로운 모델을 발표했습니다. 바로 람보르기니 V12  비전 그란 투리스모(V12 Vision Gran Turismo)입니다.

게임 ‘그란 투리스모’를 위해 만들어진 비전 그란 투리스모는 람보르기니가 이제까지 보여준 어떠한 디자인보다도 하이퍼카로서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V12 819마력의 엔진과 48볼트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시안’과 동일한 파워 트레인을 사용하는 이 컨셉은, 성능을 떠나 슈퍼카 매니아들을 설레게 하였습니다.

이런 극강의 컨셉카를 보여준 람보르기니는 사실 1963년 그들의 첫 양산차인 ‘350GT’부터 V12 엔진의 사용과 유려한 디자인으로 떡잎부터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전설적인 모델 ‘미우라’를 만들고 290km라는 당시 어마어마한 속도를 보여주며, ‘슈퍼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후 람보르기니는 1974년 쿤타치를 발표하며 그들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습니다. 마르첼로 간디니의 혁신적인 쐐기형 디자인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람보르기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시저 도어’역시 쿤타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람보르기니는 1990년 디아블로, 2002년 그들을 다시 살려낸 또 하나의 전설적인 모델 ‘무르시엘라고’를 발표해 슈퍼카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다지게 됩니다. 이후 2011년 많은 파생 모델의 바탕이 되는 700마력에 350km의 최고 속도를 가진 ‘아벤타도르’를 만들어내고, 위에서 언급한 ‘시안’을 통해 이제는 하이브리드 슈퍼카의 영역까지 도달했습니다.

이렇게 람보르기니는 약 56년의 시간 동안 매번 진보된 모델을 세상에 선보여 슈퍼카 브랜드로서의 탄탄한 내공을 쌓아 페라리와 함께 전 세계 슈퍼카 시장의 최전선에 있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탄탄한 람보르기니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심지어 라이벌인 페라리와 비교해보면 더욱더 부각되는 부분인데요.

그것은 바로 ‘F1’입니다. F1은 모터스포츠라는 하나의 거대한 문화이자 자동차 브랜드로서의 기술력과 자본력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입니다.

람보르기니의 직접적인 라이벌인 페라리는 1950년 F1이 시작된 이후로 단 한 시즌도 빠지지 않고 출전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1929년 설립되어 가장 오래된 그랑프리 경주 팀인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15회의 드라이버 챔피언십 우승, 16회의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우승 기록을 보유하며 F1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짧지만 람보르기니도 F1에 출전한 기록이 있는데요,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약 4년 동안 F1에 참가한 경험이 있습니다.

 

1987년 미국의 거대 자동차 회사 ‘크라이슬러’는 재정난에 시달리던 람보르기니를 인수하였습니다. 당시 회장이었던 ‘Lee Iacocca’는 람보르기니에 엄청난 자금을 투자하면서 람보르기니가 F1에 출전하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힙니다.

그는 당시 페라리 전 팀 매니저였던 ‘Daniele Audetto’를 영입하여 람보르기니의 F1 부서인 ‘Lamborghini Engineering’을 그에게 맡깁니다. 그리고 1970년부터 1980년대까지 페라리의 성공을 이끌었던 ‘Mauro Forghieri’를 스카우트하고 그를 3.5 리터 V12 자연흡기 엔진 설계자로 투입합니다.

이렇게 완성된 람보르기니 엔진은 1989년 시즌 당시 F1팀 중 하나였던 ‘Larousse’의 ‘Larousse 89’ 모델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1989년 시즌 스페인 ‘Jerez’에서 열린 스페인 GP에서 6위를 기록하고, 그 경기에서 4번째로 빠른 기록을 보여주며 람보르기니는 F1에서의 순조로운 출발을 맞이하게 됩니다.

1989년 준수한 출발을 보인 람보르기니는 다음 해인 1990년 시즌에서 Larousse뿐만 아니라 또 다른 팀과 엔진 계약을 맺게 되는데, 그 팀이 바로 ‘로터스’입니다. 1989년 Judd의 V8 엔진으로 골머리를 앓던 로터스는 1990년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람보르기니와 손을 잡게 됩니다.

하지만 로터스는 섀시 문제로 최악의 시즌을 보내게 됩니다. 이와 반대로 Larousse 팀은 ‘Wrold Championship’에서 6위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하였습니다. 특히 팀 내 일본 드라이버 ‘Aguri Suzuki’ 가 일본 Suzuka에서 열린 경기에서 3위를 기록하며 람보르기니의 명성을 더욱 높여주었습니다.

하지만 Larousse 와 람보르기니의 인연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90 시즌이 끝나고 1991시즌, 그들은 람보르기니 엔진 대신 포드의 Cosworth 엔진을 채택하였습니다. 람보르기니는 다시 새로운 팀을 모색하였고 ‘Ligier’라는 팀과 엔진 계약을 맺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팀을 위해 엔진뿐만 아니라 섀시도 만들어 그들의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들이 섀시를 제공해 준 팀은 바로 ‘Glas’라는 신생팀이었습니다. 멕시코 출신 사업가 ‘Fernando Gonzalez Luna’가 2000만불을 투자해 ‘Glas’를 만들었고 람보르기니는 엔진과 섀시를 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Fernando Gonzalez Luna가 투자금을 중도에 회수해 갑자기 재정상에 공백이 생겨버립니다.

엔진에 섀시까지 만든 람보르기니는 결국 직접 Glas 팀을 운영하게 됩니다. 팀명을 ‘Scuderia Modena SPA’로 바꾸고 ‘Lamborghini 291’이라는 모델로 1991년 시즌에 참가해 F1팀으로써 첫 발을 내딛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1991 시즌을 참가한 람보르기니는 첫 경기에서 7위의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이렇게 순탄할 것만 같았던 람보르기니는 나머지 경기에서 처참한 결과를 보여 줍니다. 가장 좋은 기록은 첫 경기에서의 7위가 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한 시즌을 끝으로 람보르기니 F1팀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람보르기니는 91시즌을 끝으로 F1에서 완전히 떠나고 싶어했지만 이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비록 그들 자체의 F1팀은 망했지만, 아직 엔진 공급자로서 ‘Minardi’ 와 다시 람보르기니 엔진을 사용하게 된 ‘Larousse’ 와의 계약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각각 1993년, 1994년 다른 회사와 엔진 계약을 맺으며 1994년 람보르기니와 F1의 인연은 완전히 끝이 나게 됩니다.

앞서 말하였듯이 람보르기니는 짧지 않은 그들의 역사에서 기초부터 탄탄히 내공을 쌓아온 브랜드입니다. 40~50년 전 모델인 미우라나 쿤타치가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것을 보면, 그들이 매 모델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며 만들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람보르기니도 F1에서는 처참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요. 이를 통해 F1이라는 세계의 진입장벽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실패에도 주저앉지 않고 슈퍼카 브랜드로써의 입지를 굳건히 한 만큼 다시한번 포뮬러 원에 도전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보며 오늘 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